이야기하기는 뭐한지 한결같이 나왔다(출어)라는 말 앞에 아마도(개)라는 글자를 집어넣고 있다. 이건 반고가 대단히 신중하게 추론하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2천 년 후의 민국 초의 대학자 장병린은 그의 저서 ≪국학개설≫에서 반고의 이 신중한 추론을 굳게 믿어 계속 주장
제자들이 편찬한 것이다. 물론 이 말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확실히 일리가 있다는 점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알 수 있겠다.
아울러 제자라는 용어 뒤에 감초 격으로 달라붙는 백가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제가란 "일 백가구"란 그런 뜻이 아니다. 백이란 one hundred의 정수가 아니라
제자였는데 훗날 진나라 재상이 되었다. 순경의 시대에는 세상의 정치가 혼탁했으며, 멸망하는 나라와 난폭한 군주가 잇달아 나오고, 성인의 기본적인 도리를 닦아 몸으로 실천하려 하지도 않았으며, 무속에 빠져 길흉화복의 징조를 믿고, 못난 유학자들이 하찮은 일에 얽매이며, 장주(莊周)같은 이들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자 “장자”는 제자백가 중 도가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노자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자는 송나라의 ‘몽’의 출신으로서 노자를 계승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존한 인물인지 확인불가하다.
장자는 도가의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호방한 기개와 정밀
백가의 시대였다. 사회가 혼란한 만큼 세상을 구하는 방법에 대한 각종 사상이 탄생했으며, 다채로운 사상 논쟁이 전개되었다. 맹자 역시 논쟁에 참여한 사상가 중 한명으로서 그는 공자의 제자를 자처하며 유학의 골격을 완성하는데 이바지했다. 지금부터 맹자의 성선설과 윤리사상, 정치사상에 대해
나타냈다고 한다. 제나라 직하의 학궁에서 오랫동안 제자백가를 배웠다고 하는데 아마도 학궁이라는 곳은 나라에서 설립한 국립대학이나 연구소 쯤 되는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순자는 지금의 대학 총장이나 연구 책임자에 해당하는 좨주라는 자리에 세 번이나 오를 만큼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1, 춘추전국시대와 맹자의 비판사상
맹자는 무엇을 근거로 왕도사상을 주창한 것일까? 당시 많은 사상가들이 맹자에 앞서 이미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이고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묵자墨子와 양주楊朱의 무리였다. 춘추전국시대는 철학의 시대라 할 만큼 제자백가가 융성했던 시대로, 춘추전
중국 고대의 사상가인 장자는 제자백가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노자의 뒤를 이어 도가를 발전시킨 사상가로 평가되고 있다.
장자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극히 어지러워서불안정한 시기인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적 환경에서 태어나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의 사상을 피력한 사상가중에
장자는 송의 몽읍에서 태어난 중국 전국시대말의 사상가이다.
장자는 노자의 학설을 가장 잘 계승하고 발전시킨 인물로서 수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펼쳤던 것을 나타내는 말인 제자백가중 도가의 대표사상가이다.
그리고 장자는 인생관을 사생을 초월한 절대무한의